이번 글에서는 텔레비전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텔레비전의 역사, 역사 속의 텔레비전
텔레비전은 현대사회를 대표하는 20세기의 기술 발명품이다. 텔레비전은 수상기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텔레비전 방송을 가리킨다. 뉴스와 광고, 오락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채널이기도 하다. 1900년 8월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전기기술총회에서 사용된 텔레비전이라는 말은 30여 년이 지나 실제의 텔레비전 기기로 만들어져 세상에 선을 보였다.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에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던 1927년, 타임지가 '20세기 가장 중요한 100명' 중 한 명으로 꼽은 필로 판스워스(Philo Farnsworth)가 미국에서 시제품을 발명하였다.
히틀러 통치하의 나치 독일은 1935년 세계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고, 이듬해 베를린 올림픽을 생중계하였다. 한편 미국의 경우, 1939년 미국의 거대 방송사인 RCA가 뉴욕세계박람회에서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의 육성 연설을 텔레비전으로 방송하면서 향후 세계방송의 역사를 주도하였다.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CBS 방송사가 컬러텔레비전 수상기를 공공장소에 설치하여 방송을 시작하였다. 시청자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정규적으로 기획·연출·편집·제작하는 거대 TV 네트워크(network)들이 구축되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NBC, ABC, CBS 등의 방송사들이다.
이후 미국은 케이블 TV와 위성 TV를 발전시키면서 세계 텔레비전 산업을 선도하고, 텔레비전 기술의 명실상부한 표준 국가로 자리 잡았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 텔레비전 산업은 한참 지체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전쟁 후인 1956년 5월에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인 HLKZ TV가 개국했다. 이는 세계에서 15번째 이자 아시아에서 4번째이다. 서울을 시청권으로 해서 시내 중심가 40군데에 설치된 수상기로 개국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제대로 된 텔레비전 방송은 5.16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12월 31일 KBS TV를 통해서이다. 1964년 12월 7일에는 DTV가 개국하고 이듬해 TBC TV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9년 8월에는 MBC TV가 개국하였다. 방송사들이 통폐합되고 현재와 같은 공영방송제도가 도입된 1980년대 초기에는 컬러 TV가 도입되었다. 혹독 한 3S정책을 고수한 군사독재정권의 눈치를 봐야 했던 KBS는 1983년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이라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초대형 방송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1980년대 내내 한국의 텔레비전은 공정성 상실, 국민의 알권리 박탈, 프로그램의 질 저하 등을 이유로 시민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고, 1986년에는 KBS TV를 상대로 한 전국 규모의 시청료 거부운동이 펼쳐졌다. 다행히 1987년에 진행된 민주화는 TV 방송의 영역에서도 일정한 자유화 민주화의 결과를 가져왔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결코 시도될 수 없었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권력을 고발하고 진실을 파헤치는 PD 저널리즘, 시사 프로그램들이 시작되면서 방송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199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문민정부가 시작되면서 더욱 확산되어, 2000년 중반에 이르기까지 일정하게 계속되었다.
한편 한국의 TV 방송은 1990년대에 들어 산업적으로도 크게 성장했고, 새로운 방송사들이 속속 출현하였다.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은 탈규제화 및 방송산업 진흥의 정부 정책에 기반을 둔 현상이었다. 1991년 12월에는 상업방송인 서울방송(SBS)이 수도권 지역 대상 방송으로 개국하면서 과도한 시청률 경쟁으로 방송의 선정성, 저질성 시비가 잇따랐다. 시청자들이 'TV 끄기 운동'을 벌일 정 도였다. 1995년부터는 부산과 대구, 인천, 울산 등지에도 지역 민영방송이 개국하였다. 동시에 유선방송, 즉 케이블 TV 방송의 시대도 개막되었다. 본격적으로 상업방송의 시대가 열리면서 방송을 영상산업의 일부로 간주하고 자유로운 시장 경제로 인식하는 경제주의적인 관점이 고착화되었다.
텔레비전이라는 대중매체의 의미 변화 2000년대 접어들어 한국의 TV 방송은 기술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2001년에는 지상파 TV의 디지털방송이 시작되었고, 이에 맞춰 HDTV에 맞춘 고화질 프로그램이 제작 편성되었다. 2005년에는 텔레비전 낮방송이 전면적으로 허용되고, 디지털 케이블 TV 방송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그 이전인 2002년 3월에는 스카이라이프가 개국되어 이 땅에도 디지털 위성방송이 출범하였다. 명실상부한 다매체·다채널 시대가 되면서 방송사들 사이에서는 제한된 광고시장을 둔 전례 없는 경쟁이 펼쳐졌다.
2008년 11월에 IPTV가 한국에 선보인 이후 급성장세를 보이며 유료방송시장을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11년 12월에는 JTBC, TV조선, 채널A, MBN 등의 종합편성 채널이 개국하였다. 보도와 교양, 오락 프로그램 등을 말 그대로 종합적으로 편성할 수 있는 방송사들로서, KBS나 SBS와 같은 방송국이 한꺼번에 4개나 설립된 셈이며, 그전과는 전혀 다른 텔레비전 환경이 구축된 것이다. 종합편성 채널의 정치적 편향성과 이념적 폭력성, 공영방송과 공정방송의 위기. 상업주의의 득세와 저널리즘의 해체를 둘러싸고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오늘날의 텔레비전 환경을 놓고 무한경쟁, 약육강식, 각자도생이란 무서운 말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TV 방송을 산업으로 볼 것인지 문화로 볼 것 인지를 두고 논란이 강화되고, 난개발에서 한참 나아가 자본에 의한 미디어 생태계의 심각한 교란상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영방송으로의 낙하산 사장 파견과 비판적인 언론인의 해고, 과도한 심의 강화 등을 두고 방송 민 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는 견해도 상당하다. 명백히 텔레비전은 기술적으로나 산업적으로 크게 성장한게 틀림없다. 하지만 정치적·문화적, 그리고 질적으로 발전했는지를 두고서는 의견이 크게 갈린다.
한국과 세계의 텔레비전 역사를 상술하는 것은 지면의 제약상 불가능하다. 현대사와 텔레비전의 복잡하고 깊은 연관성에 관해서는 별도의 학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주지할 것은 텔레비전이 고유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역사라는 현실 속에서 발전·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텔레비전은 20세기는 물론이고 21세기 현대사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특히 점차 거대해지는 상업적 자본의 이익과 자칫 민주주의를 짓밟을 수도 있는 국가권력의 의도와 따로 떼어 놓고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텔레비전이다.
시민대중인 시청자들이 텔레비전에 관해서 많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만큼 텔레비전의 파급력과 영향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가 TV를 만들지만, 반대로 TV가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자본과 국가라는 권력이 TV를 정치적·경제적으로 지배하려고 들지만, 상대적으로 큰 힘이 없는 대중들이 TV를 민주적 사회적으로 규제할 수도 있다. 텔레비전은 이미 그 의미나 가능성이 확정된 매체가 아니다. 현실의 세력관계에 따라 부단하게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대중매체라고 보는게 정확할 것이다.
정치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고, 경제적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회적으로 중대한 힘을 발휘하는 텔레비전에 대해 일정한 정치경제학적 비판의식과 사회문화적 문제의식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텔레비전은 현실의 역사라는 결정적 조건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면서 역사를 만들고 바꾸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떠맡는다. 바로 이런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의미에서도 텔레 비전은 중요한 사회 공적인 매체가 된다. 대중인 우리가 장치로서나 문화로서 그리고 창작으로서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할 대중매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