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포스트 텔레비전 환경에 관한 특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포스트 텔레비전 환경의 특징
유비쿼터스 모바일(ubiquitous mobile) 텔레비전
포스트 텔레비전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디에서나 체험 가능한 환경이다. 우리 의 일상 어디서나 쉽게 관찰하고 누구나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며, 누구든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맞추어 텔레비전에 접속할 수 있다. 심지어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텔레비전에 노출된다. 바로 이게 포스트 텔레비전의 환경이다. 기존의 텔레비전 시대를 잇는 일종의 심화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전통적인 텔레비전 환경은 방송사가 이미 작성한 편성에 의해 시청행위가 크게 좌우된다. 우리의 스케줄은 방송의 스케줄에 맞추어져 이루어진다. 주말 버라이어티쇼(veriety show)를 보기 위해 일찍 집에 들어가야 했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9시 뉴스를 보기 위해서는 안방이나 거실의 수상기 앞에 모여 앉아야 했으며, 심야 토크쇼를 시청하기 위해 수면시간을 늦춰야 했다. 이러한 행위는 모두 시청률이라는 단일한 수치로 기록되었고, 그에 따라 방송사의 수입구조도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패턴은 더 이상 지배적이지 않다. 점점 '본방'을 '사수'할 필요가 줄어들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로 볼 수 있고, 다운로드하여 다른 매체로 옮겨 시청할 수 있다. 9시 뉴스를 인터넷에서 보고, 심야가 아닌 이른 출근길에 어젯밤의 오락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인기 있는 주말 버라이어티쇼는 사실상 늘 여러 채널에서 방송되고 있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처럼 언제든지 접근 가능한 텔레비전이 공간의 구속으로부터도 탈피되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유비쿼터스 모바일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텔레비전은 늘 이동 중이다. 항시 움직이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하루 24시간 일과를 돌아보면 이러한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켜진 대형 LED TV를 통해 잠시 아침 뉴스를 본다. 어젯밤 프랑스 파리에 서 발생한 무장 테러 사건의 끔찍한 현장화면을 원격으로 시청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서둘러 출근하기 위해 전철을 기다리는 중에 승강장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 해 원격으로 송신된 각종 광고 메시지를 전달받게 된다. 원치 않아도 노출되는 스펙터클이다.
이곳 저곳에 설치된 CCTV에 의해 원격으로 감시되는 것은 물론이다. 차 내에 들어서면 스마트폰을 꺼내 SNS로 원하는 동영상을 검색하거나 놓쳐 버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다. 유럽의 프로축구를 생중계하는 DMB 스포츠 채널을 즐길 수도 있다. 이러한 일상이 직장과 퇴근길에서, 그리고 퇴근 후 가정에서 고스란히 반복된다. 원격시청 경험의 일상적인 반복이다. 이러한 일과는 허구로 지어 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통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경험이자 사건이며 환경으로서의 텔레비전이 우리를 24시간 내내 둘러싸고 도시공간을 가로질러 펼쳐진다. 이제 텔레비전은 언제 어디에서나 구현되는 시각적 현상이다. 집 안이나 식당에 배치된 기존의 수상기는 물론이고, 회사에 설치된 컴퓨터, 내 손안에 들어 있는 이동전화기를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구현되는 광학적 현실이다. 이런 유비쿼터스 모바일 원격시청의 상태에 '포스트모던의 조건'에 조응하는 포스트텔레비전의 조건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smartphone) 텔레비전
포스트 텔레비전은 한 군데에 고착된 기존의 TV 수신기로부터 완전하게 탈피한 환경이다. 한 곳에 정주하지 않은 노매드(nomad)의 TV, 계속해서 이동하는 모바일(mobile)의 텔레비전이다. 사회학자 바우만(Zigmunt Bauman)은 오늘날의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유동성(fluid)이라는 개념을 고안한 바 있다. 그의 표현을 빌려 우리는 이 시대의 포스트텔레비전을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을 반영하는 유동하는 TV(fluid TV) 환경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당연하게도 오늘날 모바일 유비쿼터스의 포스트텔레비전 환경을 가장 잘 구현하는 것은 더 이상 기존의 수상기가 아니다. 유선망으로 연결된 PC도 아니다. 무선통신 단말기인 이동전화기, 스마트폰이 포스트 텔레비전의 유동성 시대를 주도한다. 손바닥보다 작은 스마트폰이 포스트텔레비전의 세계를 구현하며 포스트 텔레비전의 세상이 스마트폰의 작은 액정화면 속에 들어가 있다. 이용자들은 컴퓨터 운영체제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통해 무선으로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콘텐츠를 자유롭게 이용한다.
그리하여 '스마트 TV의 시대'는 '스마트폰 TV의 시간'이 된다. 스마트폰은 전화기와 인터넷, 신문과 텔레비전, 미디어와 이용자 혹은 이용자들 사이의 상호작용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완전히 새로운 멀티미디어이다. 사람들은 이제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고 방송국의 오락 프로그램을 즐기며 SNS에 올라온 친구 혹은 낯선 사람이 찍은 동영상을 감상한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자신의 얼굴을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올려 남들에게 보여 주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카메라 기능을 이용해 녹화해서 마치 뉴스처럼 인터넷으로 퍼트린다.
스마트폰 사용자는 불과 몇 년 사이에 남녀노소 불문하고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의 경우 2014년 8월 기준 무려 3,900만 명이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다. 총인구 4,900만 중 80% 정도가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들 모두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현실을 원격으로 체험하고 세계를 원격으로 시청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스마트폰 이용 행태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남성은 스마트폰을 통해 주로 음악과 게임을 즐기지만, 여성은 스마트폰 기능 중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 기능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또한 이미지의 게재 및 전송이라는 광의의 원격시청, 즉 텔레비전 현실을 구성한다. 스마트폰을 통한 직접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 시청 비율에는 성별의 구분이 없었다. 이러한 추세는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세계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앞으로 그 양상은 더욱 심화될 게 틀림없다.
불과 10년도 안 되어서 스마트폰 없는 세상은 더 이상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일상생활은 스마트폰을 매개로 재조직화되었다. 손 안의 스마트폰 세계가 유비쿼터스 모바일 텔레비전의 현실을 결정적으로 재구성한다. 집에 가거나 컴퓨터를 켤 필요도 없이 내 손 안의 조그만 전화 통신기기를 이용하여 방송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기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SNS나 유튜브를 통해 원격으로 시청하며 타지의 타자들과 대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