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IPTV의 시장 잠식에 대한 내용에 관련하여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IPTV, 포스트브로드캐스팅의 미래
이러한 점에서 방송통신 융합 현상이 198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 기조가 노골 화도진 미국에서 크게 강세를 띤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미국은 1996년 통신법 제정 이후 방송통신 융합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AT&T는 월가로부터 막대한 자본을 빌려 대형 케이블 MSO를 연달아 합병해 최대 케이블 TV 사업자가 된다. AOL(America Online, Inc.)과 타임워너(Time Warner)도 합병하였다.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합병이었다. 그런데 결과가 예상과 전혀 달리 나타났다. AT&T는 다른 통신회사에 매각되었고, AOL이라는 이름은 역사에서 완전하게 사라져 버렸다.
방송통신 융합, 미디어 융합이 이른바 '승자의 저주'로 이어진 셈이다. 이는 새롭게 조성된 방송통신 융합의 환경 아래에서 사업 기회나 경영 다각화를 위한 막대한 투자가 자칫 기업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방송통신 융합의 길이 결코 대자본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기대와 달리 매우 험난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요컨대, 방송통신 융합은 그 본산인 미국에서조차 업계의 화려한 수사나 대단한 기대와 달리 현실적인 성과는 매우 초라했다. 방송통신융합 정책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는 평가가 많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아직까지도 방송통신 융합 담론이 지배하는 분위기이다. 미디어 기업의 투자와 정부 정책의 방향이 여전히 방송통신 융합에 집중된다. 방송 통신 융합이 미디어 산업 발전의 현실이자 미래로 확실히 자리 잡고 있다. 미국처럼 대규모 인수·합병의 홍수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는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 시장 확대에 필요한 정책적이고 법제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방송과 통신을 이른바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간주하고, '방송통신융합산업'을 한국 미디어 문화산업의 발전방향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통신사업자들도 방송통신 융합 실현을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한 IPTV(Internet Protocol Television) 서비스이다. 광대역 연결상에서 인터넷 프로토콜을 이용해 이용자들에게 디지털 TV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주문형 비디오(VOD)는 물론이고, 기존 인터넷 웹에서 이루어지던 정보 검색과 쇼핑 등의 서비스까지 부가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방송통신 융합형 서비스이다.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며, 인터넷 전화 서비스도 제공한다. 모바일 인터넷, 휴대폰을 통한 IPTV 서비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IPTV는 고속 인터넷을 통해서 이용자들이 원하는 시간에 텔레비전 방송을 선택적으로 시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일방적 방송과 큰 차이가 난다. 미리 정해진 시간에 편성·방송하는 프로그램을 받아 보는 케이블 TV나 위성 TV와 달리, IPTV 이용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시간에 네트워크에 올라온 콘텐츠를 골라 볼 수 있다. 채널과 프로그램의 선택은 물론이고, 시청시간의 결정에도 참여하게 되는 셈이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 웹 서핑과 통신도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멀티미디어 방송 환경이 구현된다. 이러한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들은 물론이고 미디어 이용자와 방송 시청자들도 IPTV에 대해 상당 한 관심을 보인다. 현재 국내에서는 KT(올레 TV)와 SK브로드밴드(BTV), LG유플러스(U+TV) 등 3개의 통신사업자가 IPTV 서비스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펼치고 있다. 제공하는 콘텐츠의 양적인 측면에서는 KT가 가장 앞서지만, LG유플러스는 IPTV 사업자 중 유일하게 풀(full) HD 방송을 실시함으로써 차별성을 기한다.
국내의 인터넷 프로토콜 텔레비전 가입자 수는 상용화가 시작된 2009년에는 불과 50만 가구에 그치던 것이 2011년 말에 이르러서는 300만 가구를 돌파하였다. 2014년 3월 말 기준으로 약 900만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유선방송 가입자 수에 비하면 아직 적은 수치이다. 그러나, 점유율 측면에서 2014년 10월 현재 유료방송시장의 45% 정도를 잠식했음을 알 수 있다. 케이블 TV의 유료방송 점유율은 최근 들어 점차 감소한 반면 IPTV의 점유율은 계속 늘고 있다. IPTV가 기존 케이블 TV 시장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중이다.
IPTV는 현재의 법상으로는 방송이 아닌 통신으로 분류된다. 방송법이 아닌 별도의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 방송 진흥 차원에서 마련된 법이기 때문에 규제의 강도가 방송법보다 느슨하다. 이에 따르면 IPTV는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으로 정의된다. 광대역 통합정보 통신망 등을 이용하여 "양방향성을 가진 인터넷 프로토콜 방식으로 일정한 서비스 품질이 보장되는 가운데 텔레비전 수상기 등을 통하여 이용자에게 실시간 방송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데이터·영상·음성·음향 및 전자상거래 등의 콘텐츠를 복합적으로 제공하는 방송"으로 풀이된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전형적인 멀티미디어이자 첨단의 방송통신 융합형 뉴미디어라 할 수 있다. IPTV를 굳이 구분한다면 현재로서는 통신에 해당한다. 그런데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진하는 것처럼 통합방송법의 개정에 따른 '유료방송 일원화'가 이뤄지게 된다면, IPTV는 더 이상 통신이 아니게 된다. 방송으로 취급받으며, 당연히 방송법상의 규제가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동안 방 송평가에서 면제받았던 인터넷 방송사업자도 이제는 평가 대상이 된다. '동일서비스 동일규제'라는 일관된 규제를 받게 된다.
IPTV의 세계가 과연 어떻게 펼쳐질지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방송통신 융합을 급속하게 촉진시키고, 케이블 중심의 유료방송시장을 뒤흔들어 놓으며, 멀티미디어 환경을 본격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자들이 쌍방향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방송문화, 지식과 정보의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급한 콘텐츠 양산과 상업주의 확산, 미디어 중독 심 화 및 지식 격차 확대 등의 악영향을 끼칠 공산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한때 크게 유행했던 '다매체, 다채널'이라는 말로는 더 이상 급변하는 방송환경을 제대로 기술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기존의 방송 개념이나 모델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환경을 논하기 위해 '포스트(post)'라는 개념을 과감하게 써야 한다. 텔레비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방송중에서도 특히 텔레비전은 현재 기술적으로는 물론이고 제도적·산업적인 측면에서 놀라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21세기 현재와 미래의 텔레비전을 논의하기 위해 이제 우리는 텔레비전이라는 낡은 단어 대신에 포스트 텔레비전이라는 신조어를 과감하게 채택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