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급변하는 텔레비전 이후의 시대적 변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TV 이후의 텔레비전
다매체·다채널의 환경평가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2011년 출범한 종합편성 채널을 생각해 보자. 정부와 기업 그리고 보수진영에서는 종합편성 채널의 등장에 대해 지상파의 독점구조를 깨트리고 국내 영상산업을 진흥시키면서 무엇보다 시청자의 선택권을 확장시키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IPTV 등에 대해서도 똑같은 논리를 펼칠 것이다. 그리하여 새롭게 출범하는 텔레비전 채널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 혹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설파하였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에서는 미디어 난개발과 정책의 졸속추진, 새로운 채널에 대한 특혜 문제를 지적한다. 공영방송 및 지상파 TV가 위기에 빠졌고, 공정성과 객관성에 기초한 TV 저널리즘의 문화가 사실상 붕괴되었으며, 무엇보다 미디어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파괴되었다는 혹독한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양측의 입장차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틀림없다. 논쟁은 더욱 가열될 것이 다. 합리적인 판단과 공개적인 토론이 있어야 하겠지만 입장 및 견해의 차이를 좁히기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 사회와 경제, 미디어를 바라보는 첨예한 인식의 차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분명한 것은 텔레비전의 환경이 매우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미디어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에 따라 현재 우리는 포스트텔레비전 (post-television)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방송의 포스트브로드캐스팅으로의 변화보다 더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TV 이후의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과연 텔레비전 시대로부터 포스트모던의 시간으로 완전하게 이행했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혹자는 아직까지는 기존의 텔레비전 모델이 지배적(dominant)이며, 포스트텔레비전은 기껏해야 신생의(emergent) 조건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설혹 그렇게 볼 수 있더라도, 미디어 기술의 변화 속도는 상상력으로 조차 따라잡기 힘들다. 빠른 시간 내에 포스트텔레비전이 지배적인 문화로 자리 잡아 기존 텔레비전은 잔여적(residual)인 것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예측은 결코 성급하거나 무리한 것이 아니다.
텔레비전은 현재 눈부신 기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동영상을 디지털 방식으로 변조하여 송출하는 디지털 TV가 기존의 아날 로그 방식을 급속도로 대체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7년 대부분의 텔레비전 방송이 디지털 송출을 시작했고, 한국에서도 2012년 말을 끝으로 디지털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디지털 TV는 화면 비율은 물론이고 해상도, 음성다중, 부가 서비스 등에서 아날로그 수상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품질과 기능을 자랑한다. 대형 가전제품회사들 또한 안방에서 영화 수준의 영상물 관람과 데이터 방송을 즐길 수 있는 고선명 HDTV를 다투어 선보이면서 고객들을 유혹한다. 2006년부터는 지상파 DMB 방송이 시작되어 장소와 관계없이 이동 중에도 TV 시청이 가능하게 되었다. 2008년에는 IPTV가 상용화되었다. 인터넷 케이블로 전송된 실시간 방송 및 주문형 비디오(VOD) 콘텐츠를 고화질 텔레비전 수상기를 통해 받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2009년 말부터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 휴대용 단말기의 보급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DMB의 지원 없이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에 접속하여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텔레비전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청자들은 이제 시간의 제약, 공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 텔레비전 환경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텔레비전을 보는 게 아니라 텔레비전을 매개로 보고 만나서 대화하고 즐기며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경험하고 있다.
포스트 텔레비전이란 이와 같은 스마트 TV와 모바일 TV, 디지털 TV를 기반으로 기존의 텔레비전 환경으로부터 한참 나아간 완전히 새로운 원격시청 환경을 가리킨다. 인터넷 컴퓨터 네트워크와 뉴미디어·멀티미디어·스마트미디어 장치에 의해 구현되고 조성된 원격 광학의 조건이라고 할 수도 있다. 기존의 텔레비전 개념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혁명적으로 확장된 원거리 시청 환경을 의미한다.
사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텔레비전의 원래 의미는 동영상과 화상신호를 전송하는 원거리 통신 대중 매체이다. 단색 혹은 컬러로 된 화상정보를 음성과 함께 원거리로 송신하고 원거리에서 수신할 수 있는 미디어 활동이다. 그 어원을 살펴보면 텔레비전은 원거리를 가리키는 그리스어 '텔레(tele)'와 보는 것을 뜻하는 라틴어 '비시오(visio)'가 합쳐진 것으로서, 영어단어를 그대로 풀면 '원거리에서 보는 것'이 된다.
포스트 텔레비전이란 바로 이 원거리 시청의 상황이 기존 수상기를 넘어서 크게 확장된 21세기의 전혀 새로운 환경을 지시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개념이다. 포스트 텔레비전론은 시각·청각·촉각적인 측면에서의 텔레비전 환경 변화와 이와 연동된 사회적·정치적 ·문화 예술적인 생태조건을 읽어 내기 위해 최근 본인을 비롯한 몇몇 미디어 학자에 의해 고안되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TV 이후의 텔레비전을 뜻한다. 이것은 탈현대사회 내의 텔레비전이 지닌 보편적 위치, 대중생활 현실에서의 일반화된 위상을 지시하기 위한 용어로써, 기존의 텔레 비전이론을 해체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물론 이때의 '해체(deconstruction)'란 부정적 파괴 (destruction)를 뜻하는 게 아니라.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재건(reconstruction)을 가리킨다. 현실에서도 포스트 텔레비전 환경은 기존의 텔레비전 환경을 급진적으로 해체시킨다. 그것은 아래에서 살펴볼 내용과 같은 특징을 지닌 환경으로서, 텔레비전 환경의 구성원인 우리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마사지한다. 포스트 텔레비전은 단순히 메시지만 바꿔 놓는게 아니라 지식과 정보, 의식과 무의식, 욕망과 취향을 마사지하는 형식까지도 완전히 변모시킬 환경으로서 이미 우리 곁에 함께하고 있다.